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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하면서도 빠른 삼국시대 김유신처럼 직장생활하자

by 피아노를 잘 가르치는 노타쌤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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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혼란했던 삼국시대 말 김유신은 타국을 견제하면서도 김춘추를 왕으로 끌어올리는 등 자신의 자리를 잘 잡는 데 성공한다. 그 자리를 이용해 삼국까지 통일한다.

 

김유신장군 표준영정

김유신! 좋은 직장인의 표본

김유신 장군의 업적은 삼국통일을 이뤘다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은 목표를 세우고 자리에 올라가면 퍼져서 오히려 조직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김춘추는 자리에 올라간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이용하여 과업을 이뤄 냈다. 

그래서 그는 위인으로 추앙받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승진이 목표가 아니다.

그 자리를 이용하여 실적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김유신은 정적들을 제거함과 동시에 김춘추를 왕으로 만드는 강직함을 보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왕이 될만한 사람을 잘 선택하여 자신이 무엇을 하려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줌으로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김유신은

김유신은 고구려, 백제 등을 합쳐 통일한 삼국시대 말기의 군사, 정치가다. 김유신은 595년 충청북도 청원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무예와 전술을 배워서 뛰어난 군사적 능력이 함양했다. 화랑으로 성장하여 군사력과 교양을 함양했다.

 

김유신의 칼 처음에는 말을 치다.

김유신은 화랑이 된 후에도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흥청망청 노는 삶을 뉘우치고 학업과 무예에 전념하려 했다.

그런데, 그가 잠든 사이 그가 탄 말이 기생집 앞으로 가자 그는 크게 뉘우치면서 말의 머리를 칼로 쳤다는 일화가 있다.

그만큼 목표를 위해서 집중하는 방법을 찾았던 사람이다.

 

김유신 패배를 기회로 만들다.

첫 정치적 기회는 새만금 싸움에서 찾아왔다. 백제와의 전쟁에서 연전 연패하던 신라 군대의 장수였던 김유신은 정치적으로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분위기를 더 길게 가져가다가는 백제에게 잡히든 신라 조정으로 끌러가든 둘 중 하나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군사를 물린 후 회군하여 수도의 무신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명분을 쌓기 위해 김춘추가 신라의 왕이 되도록 했다. 훗날 이 일을 기틀로 해서 삼국이 통일된다.

 

김유신 당이 고구려를 점령하게 하고 신라에서 당을 축출하다.

김유신은 전투와 정치 모두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갖추었으며, 높은 군사적 지혜와 전략적 판단력, 치밀한 전술과 계획적인 전략으로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백제를 관창의 활약으로 차지하게 하고 나서 김유신 장군은 고구려 정벌의 기회를 노렸다.

아직 국가 체계가 완전했던 고구려는 쉽사리 당과 신라에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연개소문이 죽자 기회를 다시 찾은 신라는 김유신이 군량미를 맡도록 했다.

당이 고구려와 전쟁한 후 신라 장수 김유신이 없으면 

그냥 주둔하면서 신라를 식민지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군량미를 담당한 김유신은 병력의 손실이 없었고, 

지속적으로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을 축출하고 통일신라를 만들 수 있는 길을 다질 수 있었다.

 

김유신 장군이 가진 장점

김유신 장군은 김춘추를 세우는 전략적 판단이 가능한 사람이다.

관창을 앞세울 정도로 술수에도 능한 전력가다.

이런 사람이 직장에서도 성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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